로마서 4:13-25

                                   (4:13~16)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율법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의 의’로 주어진 것입니다. 혹자들이 오직 율법에 속한 사람들만이 그 상속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명시해 놓은 ‘믿음’과 ‘약속’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14절). 율법은 하나님 심판의 근거이고 인간으로 범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것은 유대인들도 잘 알고 있는 근본 진리였습니다. 율법이 구원의 길이라면 은혜의 원리와 모순됩니다. ‘믿음의 의’는 하나님 은혜의 원리를 따라갈 때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율법 구원론’은 은혜의 원리를 배척합니다. 그러나 ‘믿음 구원론’은 은혜의 원리를 따릅니다. 

은혜와 연관된 중요한 개념은 ‘의로 여김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원어는 법정 용어로 판사가 무죄라고 선언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무 근거 없는 선언이 아니라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선언입니다. 우리에게 이 근거는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감사 대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아직 ‘믿음의 법’의 신비한 은혜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4:17~25) 

아브라함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것을 믿었습니다. 90세 할머니와 100세 할아버지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신체적 조건으로 볼 때 자신과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므로 ‘임신과 출산’에 관해선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거나 생명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은혜의 사건을 경험하고 더 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처녀의 몸에서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의 그림자인 셈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것’이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이자 언약 신앙, 창조 신앙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신 은혜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신앙은 그릇된 것입니다.


  • 십자가 은혜로 무죄 선언을 받은 자로서 어떤 상황에도 감사합니까? 값없이 용서받은 그 사랑으로, 내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합니까?
  • 은혜란 갚을 길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은혜를 누구에게 전할 수 있습니까? 
  • 인간적으로 계산 가능한 것만 믿고 구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서 오늘 내가 새롭게 간구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까? 불가능해 보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