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걸림돌(10:1~5) 이스라엘 역사는 은혜로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과 이에 맞서 자기 의를 내세우는 백성 사이의 투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요구했을 때나 모두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고 자기 의를 내세운 것입니다.
말할 것 없이 분명한 사실(Rom 8:31-36) “당장 내 눈앞에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요?” 세상 많은 사람이 묻는 질문에 대해, 바울은 그보다 더 엄청난 일이 와도 믿는 이에겐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He moved from there to the mountain east of Bethel, and he pitched his tent with Bethel on the west and Ai on the east;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Genesis 12:8
무엇의 도구인가(6:12~16) 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문제는 몸을 어떤 데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몸은 사탄에게 내맡기는 불의의 병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5:12~14 이 땅에 죄와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 안에서 온 인류가 나왔기에 아담 한 사람 안에서 온 인류가 죄를 범한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죄의 정의를 보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로 죄를 안고 있습니다.
5:1~6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창조주와 원수가 되어 스스로 고아처럼 방황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은혜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4:13~16)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율법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의 의’로 주어진 것입니다. 혹자들이 오직 율법에 속한 사람들만이 그 상속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명시해 놓은 ‘믿음’과 ‘약속’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4:1~3) 유대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 바울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자신의 대를 잇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를 통해 하늘의 별처럼 그의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3:21~26)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할 수 없기에 하나님 편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셔서 길을 여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믿음, 신실함, 충성)를 통해서입니다.
(3:9~18) 유대인이나 그리스-로마 세계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우상숭배와 함께 각종 죄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이나 그들을 판단하면서 율법을 받은 특권을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준엄한 ‘하나님의 의’ 앞에서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3:1~4) 유대인의 영적 실패를 언급하고 나니 그런 유대인을 선택해 역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문제에 붙여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곤욕을 당하십니다. 유대인의 특권은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나가는 말씀의 통로이자 도구라는 데 있었습니다.
할례 자체가 구원하지 못함(2:25~27) 복음이 빠른 속도로 유대를 넘어 이방인에게 전파되던 초대교회에서 ‘할례’는 매우 민감한 신학적 문제였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본 유대인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으로 편입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비판이 나를 심판한다 (2:1~5) 남을 판단하는 일은 자신을 인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대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과 동일한 행위를 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굳이 율법을 끄집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깨어진 창조 질서 (1:26~27)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질서와 원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의 리더십 아래 있는 물질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들의 종인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는 역리를 범함으로써 창조 세계의 질서가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범죄는 진리의 억압 (1:18~20) 본문에 세 가지 중요한 명제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피조 세계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반영돼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우주와 인간을 조금만 뜯어보면 이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가 보입니다. 둘째, 인간의 범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 (1:8~12)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했습니다(11절). 바울과 그들 사이에 무슨 혈육의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상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다는 각별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 바울의 이력서 '복음과 그리스도’(1:1~4) 로마서의 서두에서 바울은 복음과 그리스도가 자신을 소개하는 이력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받게 될 로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원하는 바울이 그곳 교인들에게 자신의 복음과 신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자천서(自薦書)이기도 합니다.
1. 침묵 기도란?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요구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써 그 분 앞에 우리의 생각을 알리는 기도를 많이 해왔다. 요구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는 일반 그리스도인에게 침묵 기도라는 것이 다소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을수 있다. 그러나 침묵 기도는 매우 중요한 영성훈련이며 예배의 연장이다. 침묵 기도, 경배와찬양, 그리고 예배는 떼어 놓을 수 없다.